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임스 듀이 왓슨 (문단 편집) == 이후의 행적 ==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고 증명해낸 왓슨은 미국으로 돌아와서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를 거치고 [[하버드 대학교]] 생물학 교수로 부임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하버드에 적응하지 못하고[* 기세등등하던 왓슨은 교수회의에서 다른 자연생물학자들을 면전에서 쓸모없다고 하며 자신들의 세상이라고 공언한다. 덕분에 [[에드워드 윌슨]]과는 단 한번도 인사를 나누지 않았었다고 한다.] 1968년 사표를 냈으며, 뉴욕 롱아일랜드 부근의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의 연구소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는 본래 연구원들의 휴양과 연구를 목적으로 지어진 작은 규모의 연구소였다. 왓슨 취임 이전에는 주로 [[멘델 유전|멘델 유전학]] 제창에 주력하는 연구소였으나, 왓슨은 본인이 발견한 DNA의 구조를 이용하여 [[암]]과 같은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실제로 60년대에 들어서 암 연구 열풍이 불었기 때문에 왓슨 취임 이후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는 유전자 치료와 암 치료에 전념하게 되었다. 왓슨은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를 세계 최고의 암 전문 연구소로 만들려고 노력하였고, 그 의지에 보답이 오듯이 연구소의 제원은 어마어마하게 거대해져 갔다. 그리고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국가암퇴치법을 통과시키고 암정복이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면서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는 엄청난 지원을 받게 되었다. 콜드스프링하버의 연구자들은 1970년대에 선보인 제한효소 기술을 신속하게 채택하였고, 1972년경 콜드스프링하버의 리처드 로버츠라는 연구원은 수많은 미생물로부터 새로운 제한효소를 정제하는 기술을 개발해내게 된다. 또한 세계의 제한효소의 절반 이상이 그의 실험실에서 분리되었다. 80년대에 이르러서 [[제한효소]]가 세간에 알려지고 이러한 효소들이 상업적으로 활용될 기미가 보이자, 리처드 로버츠는 그것을 무료로 전 세계 학계 연구자들에게 제공했다. 이렇게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는 종양 바이러스 연구자들을 위한 메카가 되었으며, 왓슨은 이 연구소의 소장으로서 다시 한 번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중나선이라는 저서로도 유명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